일기

곤조

漫澜만란 2020. 12. 23. 21:58

나에겐 올해 들어 만든 별명이 있다.

곤조

곤조란 무슨 뜻이냐 물을 때 한호흡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잠시 번뜩이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와 나 자신, 또는 나와 타인과의 충돌지점을 발견하는데, 이는 이권싸움인 경우도 잦지만, 심층적으로 타협불가능한 지점까지 파고들 땐 가치관의 문제인 경우가 있다.
왜 나와 세상은 같은 마음이 아닌걸까. 세상이 나를 버렸나. 그건 알 수 없으나 그렇다면 내가 세상을 버리는 게 낫겠다. 말없는 다수에게 질문을 하느니 내세상에 공백을 나의 색으로 채우겠다, 같은 천명을 술과 객기에 취해있을 때 송년회에서 한 기억이 난다.
미사여구가 많은데, 내가 세상을 버리겠다는 부분은 맞다. 내 의중따위 묻지도 않고 내게 고통을 안겨준 세상과 사람들이 미워서 우선 그랬다. 과거에 겪은 아픔이 채워지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잊기가 어려워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를 택했다. 지금도 사실 혼자가 편한 이유다. 피부가 두터워지고 탁해진 안색으로 20대와 30대간의 경계를 세간에선 구분하기도 하겠다만 난 20대나 30대 변함없이 내상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홀로 떠돌이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내 곤조란 무엇인가, 재차 말해보자면,
내 삶은 내 삶이다. 내가 그걸 잊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세간의 가치관에 난 종속하지 않겠다.라는 비합리적인 자존감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가치관을 토대로 습관을 키워나가길 나에게 바란다.

 

2021.01.10

부정성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나에겐 어떠한 특권도 없다. No prerogative, no golden ticket. 허세 부리지 말고 스스로에게 있는 것만 인정하고, 복어처럼 스스로를 부풀리진 말도록 하자.

비합리적인 자존감은 20대까지, 그것도 불합리한 환경에서 버팀목이 되어줬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신독이 목표라면 스스로 합리적이길 기대하고 그리 행동하는 게 맞다.

더 이상 애같이 억울한 마음을 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