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또는 권력집단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이유는 개인을 포함한 소규모 집단단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수의 노력으로 보가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시너지(노동분업, 규모의 경제, 민주적 의사결정)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국가의 기원에 대해 말할 때도 홍수와 범람에 대비하기 위해 제방을 쌓는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중앙권력기구의 소요가 발생했다고 본다. 이러한 중앙권력단체는 군주정, 귀족정/과두정, 민주정 등으로 발전하였다. 정부라는 주체로 자리잡고, 국가의 정체성이 확립된 이후부터는
writing on Kurt Vonnegut's 'Shape of story' lecture Slaughterhouse Five, or the Children's Crusade
1. writing on Kurt Vonnegut's 'Shape of story' lecture
"A story can be summarized onto a x-y Cartesian graph: with time(Beginnint-End)on the horizontal, and the protagonist's state of affairs(Good fortune-Ill fortune) on the vertical." Just as the audience was, I was marvelled by the ups and downs in his narrative, roaming through Cinderella, Don Quixote, Kafka's Metamorphosis, as well as the quelled yet untouchable sense of when he moved onto Hamlet. My final astonishment came when I came across another lecture of the same title, with old fuzzy texture, perhaps from 1980's or so. And the same exact lines he put forth! His lecture few decades later mimicked his older with indiscernible deviation, only filled in the gaps with humorous laughters.
2. Slaughterhouse Five, or the Children's Crusade
reading a critical guide to this novel retells Vonnegut's story, as background needed for reading Slaughterhouse Five. It tells of Vonnegut as POW in German camp in Dresden, on February 13th, 1945, when massacre bombing was dropped, killing 135,000 people, when Vonnegut with his peer captives survived, unaware of the raid's scale, in a underground meatlocker which turned out to be the only effective raid shelter in the city.(captives in a meatlocker, huh)
His own account says that watching the enormous firestorm caused by Allies' high explosives mixed with incendiaries raining down flame on the city captured his later thoughts of the hypocrisy of his state, which claimed to be the 'good one'against evil Nazism, burning down a city of civilians with no tactical value.
Ancient Greece(800BC~600AD - Archaic, Classical, Hellenistic, Roman Greece)
Hellenistic Greece(323 BC~146 BC)
Roman Greece, or Roman conquest of Greece:
Greece came under Roman rule following Battle of Corinth(146 BC), where the defeated Macedonia served as Roman province monitoring the remaining parts of Greece. When Athens and other poleis revolted in 88BC, Sulla crushed them. in 27 BC, emperor Augutus organized Greek territory as province of Achaea.
1.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있어 첫번째로 백치를 읽어본다. 이유는 읽지는 않았지만 익히 듣는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작중 주인공 알료샤(Alyosha Jaramazov)의 원형이 되는 캐릭터라고 들었고, 또 아마 인터넷 서핑 중 백치에 대한 리뷰글을 읽어서 덩달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2.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다보면 이따금 극중 인물들이 본줄거리와는 큰 연관이 없는 각종 사회 현상들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아직 사회비판의식과 토론문화가 남아있던 시절 당시의 왜곡되지 않은 선량한 마음씨들이 이들의 열정적인 말을 통해 전해진다. 막연히 읽고있자면 이들의 말씨로부터 따뜻한 입김이 느껴질 것 같달까. 또 한편으론 도스토예프스키 본인이 평소 하고싶던 말들을 이들이 담아내는 것 같기도 하다. 사회상들을 포착하는 게 당시대 작가들의 임무이자 소명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특성.)
->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생각의 나무, 2009년)에 19세기 러시아 인텔리젠찌야의 형성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니콜라이 1세는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봉기 이후 서구 철학사상의 논의에 대한 엄격한 금지조치를 취하며, 이후에는 대학에서 철학과목의 개설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19세기의 러시아 철학자들은 철학을 서구에서와 같이 논리적인 체계로 발전시킬 수가 없었으며 문학과 사회 정치 평론의 형식 속에서 부분적으로 자신들의 철학적 견해를 개진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서양 철학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문학 동호회들이 등장했으며, 이러한 토론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식인 계층이 러시아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식인 계층을 우리는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ja라고 부르는데 서구의 인텔렉츄얼intellectuals이라고 부르는 지적 창조의 계층과는 엄연히 구별딘다. 서구의 인텔렉츄얼, 즉 인텔리들은 공동의 지적 작업에 종사하면서 공동의 경제적 입장을 추구하는 지적 노동의 집단을 의미하는데 비해,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는 사히적인 성격을 지닌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결한 일종의 종파와 같은 지식인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귀족만이 아니라 중산계층, 관리, 의사, 사제, 사생아 등등의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1850년대 이후에는 흔히 잡계급 지식인, 즉 '라즈노치네츠raznochiinets라고도 불렸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들은 항상 사회사상과 변혁이론에 열중하고 있었으며 특히 생시몽과 푸리에, 헤겔, 유물론,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있어서 사회의 변혁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 559쪽,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생각의 나무, 2009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Peter the first, Peter the Great) - 엘리자베타 여제-에 이어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가 이었던 서구화정책 중 서구사상의 도입은 푸가초프(Pugachev)의 난과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그 결을 달리 한다. 로크 등의 프랑스 계몽철학 대신 셸링, 칸트, 피히테, 헤겔 등 독일의 낭만주의와 관념철학이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푸가체프가 행한 활약을 읽고 나니 감탄스러워 다음 글에 남겨보고자 한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에 푸가체프의 난을 배경으로 해 푸가체프 본인이 등장한다고 하니 읽어봄직하다.
다만 추후 검색해보니, 각본가의 각색이 심해서 특정 인용구를 미래에서 가져오는 시대고증이라거나, 실제 고증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당대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충분하다고 느끼기에, 현재 읽고 있는 백치 및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읽으면서 천천히 곁에 두고 볼만한 것 같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일대기를 다룬 창작물이 이 외엔 없는 것 같다. (유튜브에 다큐멘터리는 몇 개 있어 참고로 봐도 좋다.)
4. 백치의 원형은 유로지비юродивый라고 한다. 영어로는 fool-saint, holy fool. 각종 기행을 저지르고 남모르게 선행을 하며 언어 너머의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죽은 개를 끌고다닌다거나, 음식점에서 테이블을 뒤짚어 엎는다던가...) 요즘 The Leftovers라는 미드를 보고 있는데, 가만 보면 Guilty Remnants하는 거랑 완전 똑같잖아? (게다가 시즌2에 나오는 pillar man까지도 stylite에서 따온 컨셉인걸 보면 작가가 동방정교회에 꽤 정통한 모양이다.) 어쩌다보니 동방 정교회 관련 유튜브와 저서에 더해 이런 서브컬쳐부분까지 가까워지는 중이다. Lord Jesus Chirst, have mercy on me, a sinner.
01/03/2021 1.SPQR, Mary Beard, Profile Books, 2015, 70쪽 Eat Me, Bill Schutt, Wellcome collection, 2017, 76쪽
2. SPQR: 보다 확실한 것은, 기원전 6세기 즈음엔 로마가 공공시설들을 갖춘 도시형 공동체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그보다 한참 이전의 가장 오래된 사료들을 들추어볼 경우, 청동기 시대 중기쯤(기원전 1700년~1300년)에도 어떤 부족들이 이 지역을 '거쳐가기만 한게 아니라', 터를 잡고 살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사료들이 충분히 있다. 이 두 시기 사이에서 더 큰 마을들이 생겨나, (무덤에 남겨진 유물들로 추론할 때) 부유한 소수 가문들이 생겨나면서 더 큰 마을들이 생겼고, 추후에 이를 중심으로 단일공동체로 결집해 도시화된 것으로 보인다.
Eat Me: 고고학에선 "죽은 사람들이 산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고고학의 어려움은 특정 장소를 발굴할 때 두 개의 시간축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범죄현장에 출동한 경찰이라면 현장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노란테이프를 둘러 외부간섭을 방지할 수 있겠지만, 고고학적 사료는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긴 세월에 걸쳐 변모를 겪는다. 동굴안에 모닥불을 피우는 장소가 있었고, 3살짜리 아이의 뼈가 모닥불 옆의 구덩이에서 사슴뼈와 함께 발견되었다고 하자. 모닥불 옆의 구덩이는 대개 식사 후 잔여물들을 버리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3살짜리 아이의 뼈는 식인행위의 흔적인가? 아닐 수도 있다. 동굴 안에 홍수로 인해 물이 들어차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3살짜리 아이가 죽었고, 물이 빠져나가면서 그 구덩이에 갇혔을 수도 있다. 또는, 다른 퇴적층에 갇혀있던 화석이 지각변동으로 인해 그 아래의 퇴적층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뼈에서 살점을 발라내기 위한 칼질이나 골수를 빼기 위한 둔기질의 흔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흔적이 아니라면 근처의 나무나 돌무더기에 깔렸을 때 생긴 자국과 분간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현장은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른 설명을 야기한다.
4. 로마의 초창기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전에 읽은 동족포식(식인을 포함한 cannibalism)에 대한 책이 떠올라 두번째로 인용했다. 로마인들이 식인행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 관점에서 로마인들의 기원을 찾는 과정에서 로마인들은 정말 Aeneas이건 Romulus&Remus이건 상관없이 떠돌이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었다는 게 결론이다. 로마인들은 "그 기원에서부터 도둑질이 상존했으며, 그들이 가진 집, 그륻의 아내들, 토지, 제국 전부를 통틀어 도둑질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Sallust의 (편지 형식을 차용한) 설명이 "아하, 그렇구나! 도둑놈들이군!"이란 생각과 함께 머리속에서 정리되었다.
부동산 거품을 막으려는 정부노력의 일환. 부자들 입장에선 돈줄 막힌다, 신용경색이다, 란 말을 할것이지만. 생각해보면 현대경제는 부채에 힘입어 성장을 이룬 부분이 많다. 신용창조란 개념부터가 fractional reserve에 기반해 통화공급을 늘리는 것이므로. 하지만 이면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고액연봉을 기반으로 저금리에 고액대출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상위층과 우량은행, 급전이 필요해 tv광고를 보고 제3금융권에서 고리대부를 받는 저소득층. 빚으로 성장한 경제성장이란 개념의 이면이다. 신고전파/새고전파식 시장우월주의적 해석에 따른 경제발전은 마치 그늘없는 스포트라이트같다.
추가. 증권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투자시 기업의 esg참여여부 및 정도를 고려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가치에 직접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기업들이 자발적인 행동에 나서게 하기 위한 유인책은 되겠다. 저소득층 대출지원, (소위 햇살론) 법정기준 최고금리 인하(24%->20%) 시도 2011, 2014, 2016년 법정기준 최고금리를 낮춘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최고금리를 1%만 낮추더라도 최저소득계층이 제2금융권 대출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고 있다. "보통 이자율은 신용등급별 대출회수율을 기준으로 정한다. 금융사들은 돈이 떼일 위험을 고려해 금리를 높게 정한다. 법정최고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떼일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제도금융권에서는 위험이 높은(17~24% 고금리를 적용하는) 저소득층에게 대부 자체를 안해주려 할것이다. 김상봉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11, 2014, 2016년 사례 분석결과 26조원의 대출수요가 제도권금융에서 불법비제도권금융으로 넘어간다고 분석했다. 이와같은 법정최고금리 인하 시 (갈아탈 수 있는) 보완책으로 저소득층 서민대출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한다.
기본소득->기본부동산 삶에 필수적인 3대 요소, 의식주. 부동산거품에 기반한 경제성장/부의 증축, 그리고 이와 동반된 가계부채 누적, 부의 불균형. 기본소득과 노동소득으로는 부동산가격 성장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게 정론이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부동산개발을 주도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정부에서 주도해 부동산 제공을 해야할 시점인가.